와인이야기
67.[최태호의 와인 한 잔] 인 비노 베리타스, 그리스 와인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2-09-01 20:26:55
  • 조회수 267


“지중해 사람들은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재배할 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미개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

역사적으로 그리스는 서구문명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현대 와인문화의 발상지다. 과거 그리스에서 와인은 중요한 교역 상품 중 하나로 포도재배 및 와인양조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과 기록이 이루어졌다. 윤리학에서부터 정치학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향력은 와인무역을 통해 지중해 전역에 전파됐다. 와인은 일상 식생활의 필요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만의 격조 높은 문화적 기준으로 세계 와인문화를 형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오늘날 지중해 서부유럽의 와인양조 및 포도재배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다.


해발고도 1100m 높이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그리스 서부 애기알리아(Aigialia) 지역의 포도밭.



20세기는 그리스의 역사와 발전, 나아가 현대 그리스와인 생산에 관한 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그리스는 황폐하고 가난한 국가로 전락한 시기였다. 당시 그리스와인은 대체로 질이 떨어지고 산화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그리스 전역에 농업협동조합이 설립되면서 가능해졌다. 대규모 와이너리들이 신기술에 투자하고 최초의 그리스 브랜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 초 화학자이자 양조학자인 쿠라쿠-드라고나 박사의 참여에 힘입어 최초로 와인 등급 제도가 통과되면서 다른 유럽 경쟁국들과 함께 현대 와인법의 기초를 다지게 됐다. 1981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대대적인 양조기술과 시설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그리스 국내외 대학에서 교육받은 열정적인 생산자들이 품질 향상을 추구하면서 그리스 와인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주요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리스인의 삶의 질이 개선되면서 새로운 소비계층이 등장했다. 규모나 생산량보다 품질에 우선순위를 둔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만든 다양한 ‘컬트와인’이 생겨나면서 프리미엄 와인에 대한 시장 수요도 충족시키게 됐다. 해외의 유명 와인박람회와 국제 와인 품평회에서 지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세계 와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많은 와인애호가가 고대 그리스 역사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작품 속 와인 관련 이야기를 통해 와인에 매료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중심에 그리스의 와인이 자리할 때다. 다행히 그리스는 전 세계 와인애호가들이 찾고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다양한 떼루아, 흥미로운 토착 품종,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와인, 장인정신이 깃든 양조방식 등을 고대부터 유지하고 있다. 높은 고도, 가파른 비탈, 다양한 지형, 예상하기 어려운 강우량이 결합한 와인 산지는 매우 흥미로운 자연적 조건을 보여준다.

지역적 특성이 뚜렷한 와인을 생산하는 그리스. ‘IN VINO VERITAS(인 비노 베리타스)’. 기원전 7~6세기 그리스의 시인 알카에우스의 시구절처럼 그리스의 미래는 ‘와인 안에 진실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온 그리스와 그리스의 와인생산자들. 끝을 인정하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겨내며 오늘의 영광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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